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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주) "합력(合力)과 협력(協力)"
 글쓴이 : 김평탄 | 작성일 : 12-12-08 11:12
조회 : 6,300  
우리는 가끔 성경에 나오는 내용 중 문맥이나 상황, 그리고 단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의 강도(한 편 강도임)가 예수님께 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든지, 동방박사들 세 명(3가지 예물을 드림)이 예수님께 경배했다든지, 예수님은 마구간(가축의 구유임)에서 태어났다는 등.... 
  오늘 말하고자하는 합력과 협력도 마찬가지이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분명하게 합력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런데 우리는 협력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합력과 협력이 사전적 뜻이 비슷하거나 같을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이 뜻하는 합력과 협력의 차이는 분명하다. 로마서 8장28절은 단어의 뜻보다는 문장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협력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의미로서 우리가 저질러 놓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을 돕는데 쓰인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도 악역을 담당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사역을 협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28장에서 말씀하는 합력은 주어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사용하셔서 결국에는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밝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가 실수하고, 심지어 범죄 한 것까지 사용하셔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예를 들면 하얀 도회지에 어린 자녀가 잘못 실수하여 가운데에 검정 물감을 떨어뜨렸을 지라도 화가인 아빠는 그 검은 점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합력이다.
  1950~1960년대에 한국장로교회는 분열로 얼룩진 역사였다. 1980년대에도 또 한 차례의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었다. 그 결과 교회의 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열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사랑하고 하나 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힘은 연합할 때 생기며, 모든 고난은 불화 가운데 생긴다.” 우리가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 됨(Unity)을 깨는 일은 안 된다. 하나 됨을 깨는 것은 사탄의 수법이요,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고도의 전술이다. 교회에는 여당과 야당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오직 마음을 하나도 묶어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을 ‘하나님께서 정리해 주실 것이야’하는 식으로 무책임한 합력의 의미를 지닌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직 내가 속해 있는 교회공동체에서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다시 한 번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사도의 권면의 말씀을 새기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린도전서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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