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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칼럼 "믿음은 세상을 바꾼다"
 글쓴이 : 구미례 | 작성일 : 05-08-21 12:13
조회 : 3,369  
믿음은 세상을 바꾼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내용이 과학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동정녀 마리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홍해가 갈라짐, 여호수아의 태양을 멈추게 한 사건 등 성경에는 기적적인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과학은 엇갈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성경의 내용이 과학과 불일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주의 모든 피조물과 그 원리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 분의 능력으로 이 세계를 붙드시고 주관하고 계십니다.

  성경과 과학이 모순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지혜와 과학이 아직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성경의 내용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해서 생긴 오해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책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자연과 성경이라는 책이라는 말이 있듯이 성경말씀과 자연의 법칙은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둘은 일치해야 합니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무한히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아니 불과 수십 년 전의 것이라고 해도 그때의 과학책을 교과서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이론이 생기면 과학 교과서의 내용은 바뀝니다. 그러나 성경책은 진리이기에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에 모세에 의해 쓰여 졌던 모세오경으로 시작해서 1900여 년 전에 쓰인 요한계시록까지 한번도 수정되거나 증보된 적이 없는 책이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진리요,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조르다노 브르노 이태리의 르네상스를 빛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근대 세계관의 진리를 위해 순교 당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당시 인문주의와 자연철학을 공부하면서 코페르니 쿠스의 지동설을 알게 되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천동설만 믿고 가르쳤던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에서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자는 성경을 부인하는 이단자로 규정짓고 종교회의 회부하여 사형을 시켰었습니다.

  그때 갈릴레이는 로마의 종교재판소에서 ‘다시는 지동설을 유포시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중얼거리면서 했던 말이 유명한 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돌로 있지…….”

  그러나 조르다노 부르너는 끝까지 지동설을 주장하였습니다. 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파문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600년 2월 17일에 교황청에 의해 화형을 당했습니다. 처형되기 8일 전 ‘네 주장을 철회하면 목숨을 살려 준다’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아니하고 죽음자리에 당당히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과 믿음의 차이 입니다. 갈릴레이는 믿음 없는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식은 언제든지 가변적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위기가 닥쳐오든지 새로운 이론이 발견되면 언제든지 ‘아니다’, ‘모른다’로 자신의 주장이 번복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릅니다. 언제든지 불변합니다.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킵니다.

  21세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도해 가는 것은 지식이 아닌 ‘믿음, 과‘신념’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불변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이 세상의 주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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