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일대에 누구든지 세 번의 기회는 주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기회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결단하지 못하기에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초한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무리 사나운 짐승도 머뭇거리고 나가지 않으면 벌이나 전갈보다 못하고, 천리마도 달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둔한 말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합니다. 맹분(孟賁,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때 力士) 같은 용맹한 사람도 주저하면 필부가 일을 결행한 것만 못하고 순임금, 우임금과 같은 지혜가 있더라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으로 말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 말은 한신(韓信)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괴통(傀通)의 설득 내용이다.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한다.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앎이 아닌 결단과 실행이 능력이다. 데카르트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해악이다.”고 했다. 단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장소가 약속되어 있다.”고 하면서 결단을 촉구했다. 선택과 결단이 요구될 때 머뭇거리면 기회는 지나간다. 시간도, 사람도, 자원도 내가 선택하고 결단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선택해야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타자에 의한 선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든지 그 선택은 내가 책임져야한다.
신앙은 선택이다. 신앙은 결단이다. 머뭇거림은 불신앙이다. 미루는 것은 불순종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한다. 최선의 선택은 주님께 맡기는 것이고, 최선의 결단은 주님의 선택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을 성경말씀에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최선의 선택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최선의 결단은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자.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택과 결단을 촉구했던 음성을 듣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여호수아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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