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위로는 명약(名藥)과 같다. 그래서 힘들 때 위로의 한 마디가 새로운 힘을 준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은가? 분명 위로와 격려, 칭찬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로와 칭찬은 중독성이 있다. 영국의 저술가 존 가드너(John Gardner)는 이렇게 말한다. “위로 받으려 하지 말라. 자기 연민은 마약과도 같다. 위로를 받으면 순간적으로 위로가 될지 모르나 중독성이 강해 결국 현실에서 괴리되고 만다.” 위로와 칭찬만을 듣고 성장한 사람은 충고나 질책을 받을 때 상처를 깊게 받을 수 있다. 칭찬만 들었던 사람은 이기적이고 유약한 심성을 갖기 쉽다. 위로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삶이 수동적으로 변화할 위험도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성과급의 제도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성과급을 준다고 직원이 일을 더 잘하게 되거나, 더 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댄 애리얼리(Dan Ariely, 행동경제학자)는 “성과급은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런 전제는 직원들을 낮춰보는 것이다. 성과급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을 더 하면 돈을 더 줄게’라는 성과급 시스템은 직원과 회사의 관계를 거래관계로 만든다. 그리고 동료끼리는 경쟁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동료와 팀을 위한 책임감’, ‘이익 공유에 따른 주인의식’, ‘일의 의미, 동료애, 학습과 성장기회’와 같은 사회적 가치가 오히려 동기부여가 된다.
주님은 사람 앞에서 행하는 구제나 금식을 금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상급을 이 땅에서 사람에게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3, 17~18).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기에 사람에게 위로를 받거나 칭찬을 받는 것을 예수님은 금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위로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성도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의 온갖 상처로 얼룩진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위로를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