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든지 실수하며 산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수는 실패인가? 실수가 실패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실수가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활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실수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실수는 힘을 빼게 하고 열등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그래서 실수야말로 인생의 선생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긍정적인 것에서 배우는 것보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오히려 부정적인 것을 통해 배우는 효과는 더 크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가 실수해도 혼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녀들의 실수는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에 실수를 축하해준다. 자녀가 실수를 할 때에 부모인 자신도 지금까지 많은 실수를 해왔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실수가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귀중한 일임도 일러준다. 사람이 선한 뜻을 가지고 도전을 하다가 실수를 했을 때 낙담하게 되면 다음에는 어떤 선한 일에 대해서도 시도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실수를 호되게 꾸짖는 것보다는 격려하는 것이 삶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해 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진짜 실수임을 가르쳐준다. 미국 시카고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여름휴가 기간 주일에 어느 시골의 조그만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었다. 그 교회의 음향담당자가 예배시간이 다 되어서야 음향을 설치하면서 실수를 거듭했다. 스피커에서 ‘펑펑’하는 소리를 연발했다. 예배를 마치고 시골교회에 온 값을 톡톡히 치렀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그 교회에서 또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때에도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하는 것을 보고 시골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10~11). 이것이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