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율권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권한을 갖는다. 그것을 천부적 인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자율에 의해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타율에 의해서 진행되는 일을 피동적으로 수용해야할 때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에 의해서든, 타율에 의해서든 자기가 행한 언행에 대해서는 그 과정과 결과를 모두 책임져야한다. 니체의 말대로 ‘인간은 이 땅에 던져진 존재’다. 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다. 그것을 운명 또는 타율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성인이 되고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삶을 살아야 할 때에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한다.
완장문화(腕章文化)라는 말이 있다. 완장은 조직 내에서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표지로 사용한다. 축구경기에서 팔에 띠를 두르게 해서 팀의 주장임을 표식을 한다. 과거 중고등학교에서도 선도부와 주번에게 완장을 채워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완장 하나 얻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상가(喪家)에 가면 상주(喪主)는 완장을 착용한다. 그것도 한 줄, 두 줄, 세 줄로 서열을 매긴다. 그러나 완장을 찼다고 존경 받는 것이 아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에는 완장을 채워주고 일제의 앞잡이로 활용했다. 공산당도 완장을 채워 그들의 앞잡이로 사용했다. 그래서 지금은 완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더 많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와 함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것을 완장이라고 부른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그렇다면 내가 차고 있는 완장은 어떤 것일까?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권한과 책임져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자. 하나님은 모든 일에 책임을 물으신다. 내 인생에 대해 결산서를 제출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므로 완장을 많이 가졌다면 그만큼 책임질 일도, 제출해야할 결산서도 많다는 의미다. 14세기 백년전쟁 이후 프랑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말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인생은 권리를 가진 만큼 책임도 감당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