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어떻게 살았든지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 앞에서는 경건함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에 대한 인지상정이다. 사형수가 마지막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에라도 그 당사자에게는 진실함을 보여주는 순간이 될 것이다. 증자는 말하기를, “새는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그 말이 착하다(曾子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고 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항상 인생의 끝을 보고 살며, 끝을 생각하며 산다.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의 난국을 모면하고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 전도서 7장2절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마지막 말을 착하고 진실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던 한 편 강도는 마지막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사람이었다. 가룟 유다도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서도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행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말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한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말을 진실함으로 준비해야 한다. 평소에 진실하게 살지 않은 사람은 마지막 말도 진실한 말을 하지 못한다. 살았을 때 진실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직면해서 진실한 말을 남길 용기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을 자신을 버리고 진실함을 밝히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소중하다.
나는 마지막 눈감을 때 무엇을 말하고 싶을 까, 내가 마지막 눈감을 때 무엇을 보고 싶을까, 내가 마지막 눈감을 때 누구를 보고 싶어 할까? 그것이 나였다. 그것이 내 삶이었다. 그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그것이 내 비전이었다. 인생의 마지막은 말로, 생각으로만 되지 않는다. 생각과 말과 삶으로 마지막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마지막 죽음을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특히 경건한 자의 죽음을 소중하게 여기신다고 하셨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편116:15).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며 돌무더기 속에서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질병을 친구하며 부자의 집 대문에서 얻어먹으면서 평생을 살았던 나사로가 세상을 떠날 때 천사가 그 영혼을 받들어 낙원으로 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