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세 가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먼저는 무엇을 보고 기뻐하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사람은 평소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성취하면 기쁨이 충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혼자 있을 때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무실에서는 자신의 직위와 업무에 충실 한다. 그러나 퇴근 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 가정적인 사람은 가정에 충실 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집을 찾는다. 긍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휴일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간다. 마지막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처지가 같은 사람을 사귄다.
우리교회에서는 지난 주간에 ‘대각성전도집회’를 통해 ‘새생명축제’를 했다. 이것이 이벤트로만 끝났다면 숫자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숫자의 결과평가를 하는 것이 꼭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다. 외적 만족감을 주는 결과다.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재정의 투자에 비해 많은 결과를 얻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은 주님께서 약속하셨기에 당연히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이 큰 기쁨일 수 있다.
주님의 파송을 받은 70명의 전도대원은 사명을 다한 후에 기쁨이 충만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주님께 전도보고를 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누가복음 10:17). 그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20). 전도의 같은 결과를 놓고 전도대원들과 예수님의 시각이 달랐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인가? 하늘나라의 생명책과 상급의 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자. ‘천국녹명’의 기쁨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기쁨이다. 오직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는 성도들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이번 새생명축제를 통해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함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며, 영혼구원에 대한 비전을 더 크게 갖는 기회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