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아가면서 사람들로부터 평판을 받는다. ‘저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 저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 등으로.... 그러나 평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주간이나 한 달 만에 평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수한 모래알을 쌓듯이 쌓아가는 것이 평판이다. 평판은 내가 의도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위적인 평판은 곧 그 밑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모래성은 파도가 밀려오면 한 순간에 떠내려가듯이 평판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순간이다. 한 번 말의 실수로 평생 쌓았던 평판이 무너지기도 한다. 혼잣말을 하다가 본심이 발각되면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평판을 쌓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힘들다.
사람에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감정계좌를 만들고 살아간다. 감정계좌는 신용으로 형성된다. 처음 만날 때, 또는 선입견으로 적정수준의 관계의 신용이 피차 형성된다. 그것을 감정계좌라고 한다. 신용이 돈독해지면 감정계좌의 잔액이 급격하게 플러스(+)가 된다. 그러나 실망을 통해 신뢰가 깨어지면 감정계좌가 마이너스(-)가 된다. 그리고 감정계좌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반응이 달라진다. 감정계좌가 플러스인 사람이 실수를 했다면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하는 식으로 이해를 해준다. 그러나 감정계좌가 마이너스인 사람이 웬만큼 좋은 일을 해도 좋게 보지 않는다. ‘무슨 속셈이 있겠지’ 아니면, ‘어쩌다 그랬겠지’하는 식이다.
지금 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가? 지금 우리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사람들의 시각이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의 삶에 참고해야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태복음 16:13~15).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해 주는 평판을 받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