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위 ‘묻지마 살인사건’이 매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17일 오전 01시5분 경, 서초동에 위치한 노래방 건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 모씨가 20대 여성 하 모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김씨는 다니던 신학대학원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해 중퇴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그가 일하던 식당에서도 주문을 잘 받지 못해 주방 보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범죄학자들은 김씨가 보인 극단적 공격성을 ‘적대적 공격’으로 분류하고 있다. 금품 절취나 강간 등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격성을 보인 것이 아니라 왜곡된 자아와 우울 증상, 불안 심리가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분노는 여러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분노가 통제되지 않고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 격분이 되어 인격을 파괴하고 복수를 하도록 몰아간다. 분노가 내부로 깊이 파고들면 원망이 되어 쓴 뿌리를 낳고, 모멸감, 상해, 학대받은 감정에 대한 불쾌감이 쌓이게 된다. 내면의 분노에 대한 잘못된 시각은 과잉반응이나 무반응이다. 분노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2가지 태도를 가져야한다. 먼저 분노에 대한 올바른 태도다. 분노 자체는 문제도 아니고 핵심 감정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증상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분노의 뿌리가 되는 근원적인 감정들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 뿌리는 두려움, 상처, 좌절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분노의 초기 단계에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은 매우 유효한 방법이다.
성경도 분노에 대해 절대 금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때때로 분노가 생기기 때문이다. 의롭고 경건한 분노도 있지 않은가? 불의한 것을 보고도 분이 생기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 중산층에 대한 조건 중, 공분(公憤)에 참여하는 자가 중산층의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분노 때문에 죄를 짓지 말아야한다. 분노를 절제하는 것은 내 몫인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 4:26~27). 모세는 그의 생애의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었다. 애굽 사람이 동족인 이스라엘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쳐 죽였다. 그리고 그의 사역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원망함을 보고 참지 못하고 반석을 2번이나치며 ‘우리가 너희를 위해 물을 내랴’고 하면서 하나님인양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결국 이 사건 때문에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도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다(민 20:10~12). 분노를 다스리자. 분노 때문에 죄를 짓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