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성도들에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삶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이루어 가야할 당연한 성품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위기 11:45b).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개역성경: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후서 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에베소서 4:13).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이 땅에서 성화의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 이 성화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능하지만 추구해야한다. 힘써야한다.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성경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는데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명령형으로 쓰여 졌다.
세상 사람들은 명성을 얻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산다.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봉에 이르면 명성과 함께 돈과 지위, 권력을 손에 거머쥐게 된다. 세상에서는 1등만 기억하지 2등에게는 존재의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명성을 얻는 것 보다 자신의 인격을 쌓는데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살아야한다. 인격은 자신을 대변해주는 것이며 없어지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명성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일 뿐 언젠가는 상실되고 만다. 명성이 있다고 인격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격을 갖추면 명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한편 인격에 기초하지 않는 명성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가치도, 목표도, 존중하는 것도 모두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신앙에 대해서만은 ‘만수산 드렁 칡’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 실용주의에 가치를 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성품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간다고 당장 돈이 되는 것이 아니며,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양심을 지키며,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면 모진 대가를 치루기도 해야 한다. 파버(F. W. Faber)가 작사한 찬송가 ‘환란과 핍박 중에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의 소중함을 찬양하고 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지켰네 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 하겠네." 이 찬양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