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면 보살, 교회가면 집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집사는 현대교회의 보편적 직분이 되고 말았다. 최초 집사의 직분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세운 직분이다. 물론 사도들에 의해 안수하여 세웠기에 안수집사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하여 여자에게 안수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서리’라는 전제하에 남녀 구별 없이 집사의 직분을 주고 있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처음 받는 직분은 집사의 직분이기에 직분을 받는 당사자에게 설레는 마음이 있지만 부담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직분을 주는 교회의 입장에서도 고민이 있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직분은 명예이기 이전에 교회를 섬기는 직분이기에 그에 합당한 신앙의 인격과 헌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장롱 면허와 같은 직분이 아니어야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곳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거룩한 삶을 살아야한다. 하물며 교회의 모든 직분자에게는 경건한 삶이 더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교회의 경건한 직분자의 중요성을 잘 알았기에 디모데에게 좋은 직분자를 찾고 세우라고 권면한다(디모데후서 2:2, 5). 목회자의 사명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의 목회자로 세운 이유가 ‘장로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교회의 충실한 농사는 경건한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다. 목회자가 충성된 사람들을 발굴하여 그들을 훈련하고 직분자로 세우는 은사가 없다면 그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는가하는 것에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교회에 경건한 직분자가 배출되고 있지 않다면, 이 또한 교회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타비티 M. 얀야빌리는 그의 책, ‘충성된 장로와 집사를 찾아서’에서 교회의 직분자의 조건에 대해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는 집사의 본질은 식탁 시중꾼이다. 집사는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교회에서 필요할 때 언제든지, 누가 불러도 달려가는 사람이 집사이다. 둘째는 교회의 직분자는 섬김을 즐기는 사람이다. 섬김의 요소는 은사와 시간,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물질을 사용하여 교회와 성도를 섬길 마음이 있는지를 살피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한다. 셋째는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영적체험을 전할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금년, 2014년을 결산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교회는 사람의 열매를 얼마나 맺고 있는가?’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경건한 성도가 되자. 그리고 장롱에 간직했던 직분을 과감하게 사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