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때 ‘감사하다’는 말만 잘해도 굶어 죽지 않는다고 한다. 땡큐(Thank you, 영어), 당케(Danke, 독일어), 무챠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 스페인어), 메르시 보쿠(Merci beaucoup, 프랑스어), 씨에씨에(??, 중국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일본어) 등은 각국의 감사하다는 말이다. 믿음의 결과는 찬양과 감사로 귀결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만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그리스도인들 마저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감사하다는 말에 인색하다. 아마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경계심과 공로의식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은 만사가 불만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성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의 은혜에 감사하라. 은혜를 모르는 것은 근본적인 결함이다. 그렇기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삶의 영역에서 무능한 자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은 건실한 인간의 첫 번째 조건이다.” 365 Thank You(365 땡큐)의 저자이며, ‘감사편지’ 프로젝트를 시작한 존 크랠릭(John Kralik, 1955~ )판사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늘 이런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때 까지 네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이렇게 말했다. “감사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산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발전하게 된다.”
성경에 배도(背道)를 가장 큰 죄악으로 말씀한다. 사탄도 배도자이다. 가장 흉악한 배도자는 가룟 유다이다. 그래서 단테는 그의 명작 신곡의 지옥편에서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는 두 사람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곧 가룟 유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배반했던 부루투스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말세에 세상 사람들에게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1~5).
신앙의 본질은 은혜와 감사를 아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감사가 넘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