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첫 문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弧)’로 시작한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배움은 기쁨이다. 배움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배움은 내 삶을 살찌우게 한다. 인생은 배움이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간다고 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조상의 제사에 쓰는 지방을 쓸 때 벼슬 없는 조상을 학생(學生)이라는 호칭을 썼다. 사람은 벼슬이 있든, 없든, 모두 학생인 것이다. 죽을 때 까지 배우다가 죽은 것이 인생임을 말해주는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맹자에 적자지심(赤子之心)이라는 말이 나온다. ‘갓난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대인이라’는 의미다. 한 분야에 권위가 생기고 세상에 지위가 높아질수록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순수함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호기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미 대인이 아니다. 괴테는 ‘흥미와 관심, 호기심이 인생을 충만하게 한다. 이것을 잃는다면 인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간이 배우기를 멈추고 호기심을 잃어버릴 때가 곧 죽음’이라고 했다.
배움은 영육간의 모든 분야에서 항상 필요하다. 사도 베드로는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2)고 말씀하고 있다. 배워야한다. 신앙생활도 배움이다. 영적인 부분에서는 더 배워야한다. 성경을 주신 목적이 훈련하기 위함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6~17)고 바울 사도는 말씀한다. 성경학교, 수련회, 모두 말씀훈련의 기회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29~).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고 배우자. 겸손함과 온유함을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