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사고를 갖고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자기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만 옳으며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법이며, 유일한 삶의 규칙으로 알고 다른 것에 대해 무조건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을 읽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아간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주관적으로 아는 하나님이 전부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조차 순수하게 인정하지 않고 거부한다. 유대의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살았다. 가룟 유다가 그렇게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법도와 경륜,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방법대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절대 손해 보는 분이 아니시다. 왜, 독생자 아들을 악한 이 세상에 보내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아들을 죽이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십자가는 고난과 영광이 어우러진, 결국은 고난이 아닌 영광의 상징이다. 지금 인생의 고난이 겹쳐 있는가? 그 끝자락을 보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 내가 지금 옳은 길로 가고 있다면 그렇게 하라.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빨리 돌아서라.
세상의 모든 일은 극점이 있다. 반드시 끝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전도서의 말씀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도서 3:1~2)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에서도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의 말은 한결같다. ‘세상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극즉반(極卽反)이 그것이다.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맨 밑바닥에는 희망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높은 것은 모두 내려오게 되었으니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 아무리 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해도 절대 희망을 잃지 마라. 내려가기만 하는 것은 없다. 언젠가 반드시 바닥을 치고 반등할 것이다. 다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면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진리로 믿는다. 그래서 소망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