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즉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이란 뜻으로,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임을 교훈하는 말이다. 모든 것은 정당하게, 적절하게, 도에 맞게 해야 한다. 세상일은 이렇게 모두 적당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내 편에서 또는 상대편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수준을 맞추어 피차 안위하려는 함정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엘리 제사장와 그 아들들이다. 엘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아들들의 신앙교육이 ‘이 정도면 부모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아들들도 ‘아버지의 말에 대해 이 정도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 기준이 모두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적절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수준을 하나님께 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도통(道通)한 사람’이라고 한다. 도가 통했다는 말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도통이 있기 전에 사람과의 교통, 즉 인간과의 소통, 인통(人通)이 있어야한다. 그런데 사람이 피차 알아듣기까지 소통하려면 스무 번 정도는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고 한다. 한두 번 말하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몇 번 말하면 그제야 무슨 소리가 들렸나하는 반응을 보인다. 열대여섯 번 이상 스무 번 정도 반복하면 사람들은 완전히 지친다. 사람이 지치면 그때 반응을 보인다. 듣기를 포기하거나, 지친 몸으로 실낱같은 소리에 관심을 기울여 알아듣는다. 이때가 진정으로 마음 문을 열고 교통(交通)의 문이 열리는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교통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한다. 우리가 매주일 듣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은 방대한 분량이기에 때로는 귀를 기울여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곧 잊어버리고 세상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데는 ‘적당히’라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다. 오직 그 말씀이 내 삶에 육화(肉化)가 될 때까지 듣고, 또 들어서 나를 변화시켜야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20a).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헬라 원문의 말씀을 직역하면 ‘지킬 때 까지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다가오셔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적당하게가 없다. ‘지킬 때 까지 가르치라,’ 우리 가슴에 깊이 간직해야할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