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 다시 말하면 전능자의 절대 권한에 있는 일 외에는 어떤 일이든지 도전해볼만한 일이다. 인생의 큰 업적을 남기고 간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에 도전했던 사람들이었다. 유태인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자신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말도 안 되는 것을 상상하라.” 자기에겐 불가능할만한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그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불가능의 매력’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 때 그것을 특별한 일을 했다고 말하고 비로소 감동을 줄 수 있다.
비관론자와 낙관론자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비관론자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은 모든 일에 숨어 있는 불가능한 문제를 본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문제 뒤에 감춰진 가능성을 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회나 사물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그래서 인생을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는 시각에 따라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불가능과 가능을 보는 시각차이가 생긴다. 굳이 말한다면 1%의 가능성을 보고 도전하는 낙관론자가 있는가 하면 1%의 불가능을 보고 포기하는 비관론자가 있다. 가나안땅을 탐지하러 갔던 12명중 10명은 ‘메뚜기의식’에 사로잡혀 불평과 원망을 하며, 가나안을 비난하면서 군중을 선동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가능성을 보면서 백성들을 달래고 가나안 정복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싸움은 싸워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싸움의 승패는 싸운 후에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전에 이미 판가름이 나있는 것이다. 의견의 충돌, 동료끼리의 갈등, 목표 없는 싸움, 확신 없는 싸움 등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람들 마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어려운 것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산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즐기면서 한다. 일을 성취하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에 대해 매력을 느끼면서 산다.
여러분은 무엇을 매력으로 삼고 사는가? 좋은 것, 멋있는 것, 풍부한 것, 편한 것,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비전을 가지고 ‘불가능의 매력’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