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괴리, 이론과 실제의 차이점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적당한 이중적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을 성공하는 처세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나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다르다.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가당착이요, 아전인수 격으로 살고 있다. 우리는 십 수 년 전에 뜨거운 물에 기분 좋게 죽어가는 개구리 이야기를 귀가 아프게 들었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양심이, 신앙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위기는 언제인가? 돈 없고, 육체가 병들고, 실패할 때가 위기의 때가 아니다. 진정한 인생의 위기의 때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는 때이다. 아닌 줄 알면서도, 나쁜 줄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것이 위기이다. 현실 때문에, 내 이익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 위기이다. 지금은 위기의 때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위기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의 선비정신의 절개와 기상은 어디 갔다는 말인가?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순교의 정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요즘 ‘혀를 깨물고 죽는다.’는 말을 좀 실감한다. 지금 내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내가 먹고 살려고 밥벌이 목회를 한단 말인가? 나는 젊었을 때, 젊음의 때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랬듯이, 래디컬(radical)한 성향을 가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칼날이 무뎌졌는가?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의 혁명을 일으켜야한다. 자본주의가 우리사회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을 온통 돈으로 가득 채워버렸다. 물질 숭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정도가 아닌 사모하고 숭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먹고 살아야 한다.’고 변명하고 있다. 목회자도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성도들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짖지 못하는 개’가 되어 버렸다. 신앙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기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토색한 것의 4배를 갚겠다고 한 고백은 ‘신앙은 가치관의 혁명’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뀌자! 바꾸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생각과 가치관의 혁명을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