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은 인간이 성숙해 갈수록 소중하게 여겨야할 가치다. 많이 누리고 많이 가진 자는 그 만큼의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이 성숙된 시민사회의 특징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이 시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도 '명예(노블리스)'를 누리는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이행해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폐해도 있지만, 지나친 책임감 때문에 오는 개인적인 고통에 눌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책임을 과중하게 떠안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착한 사람,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자신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자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과도한 책임감으로 인해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여 혼자서 전전긍긍한다. 이런 지나친 책임감에서 오는 죄책감은 우울증을 가져오게 한다. 프로이트는 통상적인 슬픔과 우울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과도한 죄책감과 자기 비난을 예로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훨씬 많다. 결과가 잘못되면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부모만 잘 만났다면", "대학만 나왔다면…" 하는 등으로 누군가를 원망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과거에 붙박여 산다. 성웅 이순신(聖雄 李舜臣) 장군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다음 같이 글을 썼다.
“집안이 나쁘다 탓하지 마라. 나는 역적으로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탓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머리가 나쁘다 탓하지 마라. 나는 과거에 거듭 낙방하고 서른둘 늦은 나이에야 무과시험에 겨우 급제하였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오지에서 말단 수비 장교로 세월을 허송하였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과의 불화로 수차례나 파면과 좌천을 거듭하였다. 몸이 약하다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토록 고질병인 위장병과 전염병을 병을 앓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야 겨우 지휘관이 될 수 있었다.”
어떤가? 나는 무엇 때문에 짓눌려 살고 있는가, 아님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