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의 특별한 상황에서 합성된 신조어(新造語)들이 많이 있다. 최근에 생긴 ‘퍼네이션(funation)’이라는 말이 있다. 퍼네이션이라는 말은 영어의 즐거움을 뜻하는 ‘펀(Fun)’과 기부를 의미하는 도네이션(Donation)을 합성한 신조어이다. 퍼네이션(funation)은 ‘기부는 주는 것을 넘어 즐거움을 더하는 활동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퍼네이션을 ‘퍼날려도(퍼네이션) 즐겁다’는 뜻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결국 나의 즐거움을 위해, 내 삶의 보람을 위해 하는 것이다.
이젠 우리의 모든 생각과 구조가 달라져야한다. 아니, 원래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창조의 질서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은 주는 즐거움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창조의 기쁨, 주는 기쁨, 이것이 창조의 의도가 아닐까? 권력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다. 사업은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라 생산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계발은 무차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자연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부흥은 자신만의 것으로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이다. 배움은 나를 배불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배운 것을 남에게 주기 위한 것이다.
페네이션의 또 하나의 이점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우리는 기여하고 살아야한다. 아니 기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가 어느 정도 갖추어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 지위, 명예가 있는 사람만 넉넉히 베풀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안에 있는 능력을 무시하는 생각이다. 낙심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돈과 지위가 아닌, 부모의 따뜻한 미소와 격려다. 고통 받고 있는 이웃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보다 이웃의 쳐진 어깨 위에 내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힘들어 하는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한 존재다. 이런 자원은 무궁무진하며, 언제 어디서든지 값지게 사용할 수 있다. 철학자 에릭 프롬은 ‘주는(giving)’ 행위에 대하여 “내가 주면 상대방도 주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각자 삶에서 가져온 것을 기쁜 마음으로 함께 나눈다. 주는 행위는 나의 생동감이 표현된다.”고 했다. 주는 것은 나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벌써 우리교회가 17번째로 해왔던 사랑의 바자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