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 사람은 인간적’이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의 이면에는 인간의 한계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이 인간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람에게 공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포장하고 위장하여 인간적이기를 숨긴다. 절대자처럼 군림하려한다. 그 때에는 참 기쁨이 없다. 기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순간이 온다면 인생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한편 사람이 살면서 한계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은 한계에 도달할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계를 맞닥뜨리는 것은 내 좁은 테두리를 넓힐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계를 경험하는 것은 내가 인간임을 깨닫는 기회이다. 그것을 통해 얻는 유익은 많다. 참인간이 가는 길을 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아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기회이다. 창주주이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맡기는 기회가 된다. 모세는 자신의 민족애에만 충천하여 애굽사람을 쳐 죽였다. 그것이 민족을 위한 길이고,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 앞에서 그는 도망자가 되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절감하며 살았다.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의협심을 앞세워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곧 인간의 한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기 지금 ‘제대로 살아가는 인생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을 모른 채 질주하는 자동차와 같다. 인간의 한계를 알고 사는 것은 지혜이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한계를 경험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의 그릇을 끝없이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인생의 그릇을 넓히는 기회는 한계에 부딪혀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한계는 ‘내 안에 있는 줄 몰랐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또 한 번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다. 신의 자리에 내 자신을 올려놓지 말자. 지극히 인간적으로 살아가자. 그러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노력 또한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