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쉼표는 음표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니, 프로는 음표보다 쉼표를 제대로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마냥 쉬는 것은 음악이 아닐 수가 있다. 그러나 쉼표 없는 음악은 없다. 인생에서도 쉼표가 중요하다. 김해영은 ‘쉼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달려가면서 보는 것은 놓치는 게 많다. 파아란 하늘에 구름의 궁시렁 흐름도 놓치고, 갓 태어난 아기 새의 후드득 솜털 터는 몸짓도 보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의 눈가에 맺힌 이슬 받아줄 겨를 없이 아파하는 벗의 마음도 거들어주지 못하고, 달려가는 제 발걸음이 어디에 닿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남은 며칠은 쉼표를 찍는 날이 되도록 하자.
12월의 마지막은 지난 한 해 동안의 마무리를 통해 쉼표를 찍고 가는 달이다. 2013년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힘차게 달려왔다. ‘오늘을 넘어 미래로’나아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며 달려왔다. 이젠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고 새해를 맞이하려한다. 숨고르기를 통해 잠간 심호흡을 하며 쉼표를 찍으려한다. 한 주간의 쉼은 주일에 말씀으로 쉼표를 찍는다. 한 해의 쉼은 세모(歲暮)를 통한 뒤돌아봄의 쉼과 송구영신의 예배를 통해 쉼표를 찍는다.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개구쟁이로 살았다. 학교성적은 꼴찌였다. 성인이 되어서 정신을 차렸지만 자신의 과거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치루고 학력을 쌓아 학위도 얻었다. 그러나 과거 초등학교 시절의 꼴찌의 성적은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서 술김에 자신의 모교의 교무실에 방화를 했다. 남아있는 성적표 원본과 함께 자신의 꼴찌를 날려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쉼표는 지우개가 아니다. 성적표를 불태운다고 꼴찌가 사라지지 않는다. 쉼표는 무의미가 아니다. 쉼표는 무존재가 아니다. 쉼표는 역사의 단절이 아니다. 쉼표는 존재의 부정이 아니다. 쉼표는 새로운 시작이다. 쉼표는 바울 사도의 선언처럼 새로운 존재의 선언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